“가상자산 관련 기업과 협업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2022년 가상자산 거래소 플랫타익스체인지(플랫타)를 ABB(인공지능·블록체인·빅데이터) 사업의 첫 정책 파트너로 선정했던 대구시가 최근 밝힌 입장이다.
ABB는 대구시 민선 8기 정부가 미래 핵심 산업으로 지정한 사업이다. 그 일환으로 2022년 블록체인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기술 확보를 위해 지난해 예산 78억 원을 마련했다. 또 같은 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지역 블록체인 기술혁신지원센터’ 구축사업에 선정돼 국비 지원금(18억 원)을 포함한 사업비 38억 원으로 블록체인 산업 육성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기술혁신지원센터를 설립했다.
ABB 활성화를 위한 자금 조달도 대규모로 이뤄졌다. 대구시는 ABB 기업에 대한 투자 지원을 위해 지난 2022년 234억 원 규모의 ABB 성장펀드를 조성했다. 시는 오는 2026년까지 총 1000억 원 이상 규모의 ABB 산업 펀드를 구축할 계획이다.
대구시의 파격 지원에 플랫타와 소셜인프라테크 등 블록체인 기업들도 대구시로 본사를 이전했다. 당시 플랫타는 대구시와 블록체인 교육 활성화를 위한 산학 협력을 맺고 대구은행과 실명계좌 발급 제휴 논의까지 진행해 업계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최근 대구시는 “거래소와 따로 협업한 사례는 없다”고 지금까지의 이력을 부정했다. 원래 가상자산을 육성할 계획이었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배제했다는 주장이다. 제2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기대를 품었던 가상자산 기업들 입장에선 한순간에 패싱당한 셈이다.
가상자산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기축통화로 사용되며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dApp·디앱) 등 여러 서비스에서 활용된다. 블록체인 생태계 운영의 핵심 동력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을 배제하고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지고 상용화되고 지속적으로 개발 중인 영역은 가상자산 분야”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을 배제한 블록체인 육성책은 골치 아픈 분야를 외면하겠다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행정 편의를 위해 핵심을 외면한 산업 육성은 ‘속 빈 강정’에 불과하다. 생태계 전반적인 발전을 도모할 진정성 있는 정책을 위해선 보다 열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 최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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