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다크코인’ 모네로(XMR)가 최근 4년 만에 최고가를 경신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XMR의 가격 급등 배경으로 3억 3000만 달러(약 4720억 원) 규모의 비트코인(BTC) 해킹 자금 세탁이 지목되며 불법 수단으로 악용되는 다크코인에 대한 우려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일 가상자산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50분 기준 XMR은 7일 전에 비해 약 26% 오른 284.23달러를 기록했다. XMR이 280달러를 넘어선 건 4년 만에 처음이다. 올 들어 200달러 초반대를 유지하던 XMR은 28일 오전 단기간에 30% 가까이 치솟으며 일시적으로 3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XMR은 가상자산 시가총액 20위권에 자리한 대표적인 프라이버시 코인으로, 거래 익명성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프라이버시 코인은 송수신자 정보를 은닉하는 특수 기술을 통해 블록체인 상의 자금 흐름을 추적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수사망을 피해 다크웹 거래나 자금세탁 등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많아 다크코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와 유럽연합(EU), 미국 재무부 등은 프라이버시 코인을 자금세탁 위험이 높은 자산군으로 분류하고 거래소에 거래 금지를 압박하고 있다. 해외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와 오케이엑스 등은 XMR를 비롯해 지캐시(ZEC), 대시(DASH) 등 프라이버시 코인들을 일제히 상장폐지 했다.
국내 거래소에서도 이들 코인 거래가 제한되고 있다. 업비트는 2019년 FATF 합의를 이유로 △XMR △DASH △ZEC △헤이븐(XHV) △비트튜브(TUBE) △피벡스(PIVX) 등 프라이버시 코인 6종을 동시 상장폐지했다. 다음 해 XMR이 거래수단으로 악용된 ‘n번방 사건’이 불거지자 빗썸도 즉각 상폐 조치에 들어갔다. 국내외 규제가 이어지면서 현재 XMR 거래 대부분은 쿠코인과 HTX(구 후오비) 등 중국계 중앙화거래소(CEX)나 규제망을 벗어나 있는 탈중앙화거래소(DEX)에서 이뤄지고 있다.
XMR의 이번 급등 역시 대규모 자금세탁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주요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되면서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 XMR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는 분석이다. 30일 온체인 분석가 잭엑스비티는 엑스를 통해 XMR 가격이 급등했던 당일(28일) 한 BTC 지갑에서 3520개의 BTC가 유출돼 최소 6곳 이상의 거래소로 나뉘어 입금된 뒤 XMR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탈취된 BTC 규모는 3억 3000만 달러(약 4720억 원)로, 역대 5번째로 큰 가상자산 해킹 사건이다.
블록체인 보안 기업 시버스의 하칸 우날 보안팀장은 “해커가 이미 거래소와 장외거래(OTC) 데스크에 다수의 계정을 만들며 해킹을 철저히 준비한 정황도 포착됐다”며 “자금이 XMR로 한 번 전환되면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해 피해 회수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에 프라이버시 코인을 둘러싼 논쟁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한 투자자는 “XMR은 도난당한 가상자산을 세탁하는 용도로만 쓰이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또 다른 투자자도 “의심쩍은 거래에는 XMR이 제격이다”고 지적하며 프라이버시 코인의 악용 가능성을 강조했다.
반면 프라이버시 코인 지지자들은 이러한 추적 불가 기술이 사용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투자자는 “XMR은 자신의 자산에 대한 과도한 감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며 “BTC도 초기엔 범죄자들을 위한 화폐라는 악의적 프레임에 갇혀있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 김정우 기자
- wo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