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1위 업비트가 이달 들어 하루에 한 개 꼴로 신규 종목을 상장하며 이례적 상장 공세에 나서고 있다. 2위 빗썸이 점유율 격차를 5% 미만으로 좁히며 추격하자 1위 수성을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는 이날 오전 1시 30분 가상화폐 리네아(LINEA)를 신규 상장했다. 이달 들어 열흘 만에 벌써 7번째 상장으로 하루 한 개 꼴의 속도다. 이미 지난달 전체 상장 건수를 넘어섰다.
업비트는 그간 경쟁사에 비해 보수적인 상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 지난달 말 기준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 집계에 따르면 빗썸 상장 종목 수는 406개로 업비트의 260개의 1.5배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 빗썸이 업비트의 시장 점유율을 턱밑까지 추격하면서 기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가상화폐 시황 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이달 9일 빗썸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46%까지 치솟아 업비트(50.6%)를 5%포인트 이내로 따라붙었다.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업비트·빗썸 1·2위 구도는 오랜 기간 공고히 유지돼왔다. 2023년 말 빗썸이 거래 수수료 무료라는 파격 이벤트를 내세워 약 4년 만에 1위를 ‘반짝’ 탈환하기도 했지만 지속되진 못했다. 업계에서는 빗썸의 이번 점유율 추격이 별도의 이벤트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판촉 효과가 아닌 거래 흐름만으로 점유율 격차를 5% 미만으로 좁힌 것"이라며 "업비트 입장에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비트의 월드코인(WLD) 상장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거래소 중 업비트를 제외한 빗썸·코인원·코빗에서 거래되던 WLD는 최근 일주일 새 2배 넘게 폭등하면서 빗썸의 점유율 상승을 이끌었다. 9일 빗썸의 점유율이 46%까지 치솟은 당일 업비트는 오후 7시가 넘어 WLD 상장 공지를 내고 불과 2시간 뒤인 오후 9시에 상장을 단행했다.
거래소 간 상장 경쟁이 과열되면서 심사 과정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단기간에 다수 종목을 급하게 상장하면서 요건에 맞지 않는 종목이 상장 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올 하반기 들어 상장 기준 미달로 국내 5대 원화 거래소에서 상폐된 가상화폐는 25개에 달한다. 상장 1년도 채 되지 않아 퇴출된 사례도 상당수다.
업계 관계자는 “현물거래에 한정된 국내 거래소 구조상 상장 확대가 유일한 경쟁 수단인 현실”이라며 “규제 강화가 오히려 상장 경쟁을 부추기고 투자자 보호를 약화시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