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과 관련된 용어 중에 가장 많이 듣는 것은 아마도 ICO(Initial Coin Offering)일 듯하다. 보통 ‘암호화폐공개’라고 번역하는데 말 그대로 암호화된 화폐 즉 ‘코인’을 발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회계컨설팅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 동안 진행된 ICO가 세계적으로 537건, 금액으로는 137억 달러(약 15조3,000억원)에 달한다”며 “국가별로는 미국, 싱가포르, 영국 등의 순으로 많았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ICO에 몰린 돈은 지난해까지 진행됐던 모든 ICO에서 조달된 금액보다 많다고 한다. 올해 ICO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요즘 신생 벤처기업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ICO를 적극 활용한다. 일부는 이미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투자금을 모았고, 일부는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 바쁘다.
얼핏 보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을 위해 돈을 모으는 ICO나 주식시장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모으는 IPO(Initial Pubic Offering·기업공개)나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IPO에서 발행되는 ‘신규 주식’ 대신에 ‘신규 토큰’을 넣으면 ICO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 IPO 이후 거래소에서 거래가 시작되면 기업가치에 따라 주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암호화폐도 공개된 이후 가격이 오르락 내리락 움직인다. 얼핏 보면 ICO와 IPO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ICO와 IPO는 근본부터 다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를까? ICO와 IPO의 차이점을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시작점부터 다르다. ICO는 분산화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암호화폐, 즉 토큰을 발행하고 공개원장(Public ledger)을 통해 토큰을 주고 받는다. 기본적으로 발행 총량이 정해져 있다. 미발행된 코인은 소각되고 추가발행은 없다.
반면 IPO는 중앙의 회사가 자신의 지분을 주식의 형태로 발행해 증권사 등을 통해 투자자에게 판매한다. 거래는 중앙화된 주식시장을 통한다. 투자자가 부족하면 투자은행 등이 중간에서 책임지고 인수하기 때문에 미발행되는 주식은 없다. 증자라는 방식으로 주식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IPO는 거래소 상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목적이다. 반면 ICO는 거래소 상장과는 완전히 별개다.
IPO와 ICO는 진행과정의 난이도 차이도 크다. IPO는 어렵다. 세계 최대 규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도 2004년 2월에 설립 후 8년이 지난 2012년에서야 IPO를 통과해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수익성과 성장성 등 일정 기준 이상을 넘어서야 IPO라는 것을 진행할 수 있다. 한국도 IPO를 진행하려면 3년 이상 기업활동을 하면서 일정 규모 이상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냈다는 것을 숫자를 보여줘야 한다. 결국 회사가 어느 정도 실적을 내면서 가시화된 기업 가치가 있어야 한다. IPO 절차를 거치면 주식시장에서 거래가 되는데 최소한 6개월 이상 걸린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반면 ICO는 정반대에 가깝다. 초기기업, 스타트업들은 “블록체인 기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겠다”며 ICO로 투자금을 모은다. ICO에 나서는 기업 또는 프로젝트를 자세히 보면 3년 이상 영업활동을 한 경우는 많지 않다. 개발하겠다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최소한의 시제품(MVP·Minimum Viable Product)도 없다. 아이디어가 적힌 백서(White paper)가 모든 것을 대체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백서 없이도 ICO를 하는 곳이 있다. 그러나 ICO에 성공했다고 토큰이나 코인이 가상화폐 거래소에 바로 상장되지 않는다. ICO는 투자자가 결정하지만, 상장은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판단한다. ICO와 상장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인 셈이다. ICO 절차도 짧으면 한 달 안에 가능해 상대적으로 아주 쉽고 간단하다.
투자를 받기 위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나 정보도 크게 다르다.
IPO를 진행하겠다면 투자설명서(prospectus)를 반드시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기업과 IPO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꼭 알아야 할 핵심정보와 법이 요구하는 내용 그리고 성공적 기업 운영을 위해 필요한 요소 등을 빠짐없이 담겨야 한다. 법적인 효력도 있다. 만약 투자설명서 내용이 허위거나 숨긴 사실이 있다면 법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또 손익 등 현금흐름과 재무제표에 대해선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에 반해 ICO는 관대하다. ICO를 위해 법적으로 밝혀야 하는 정보나 절차가 없다. 외부감사를 받을 필요도 없다. 발행자가 판단해서 필요한 내용을 백서에 담으면 끝난다.
IPO에서 받게 되는 주식과 ICO에서 받는 토큰은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다르다.
IPO는 기업의 가치가 녹아 있는 주식을 산다. 그 안에는 기업의 재산을 분배 받을 권리도 있고, 이익이 나면 배당도 받는다. 경영에도 참여할 수 있는 의결권이 녹아 있다. 반면 ICO로 받게 되는 토큰 혹은 코인에는 대부분 회사처럼 재산권과 의결권이 없다. 기업의 주주로서 권리는 없고, 토큰마다 제공하는 별도의 권리만 행사할 수 있다. 극소수의 토큰만 제품이나 서비스에 쓸 수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은 토큰은 가격이 올라 얻는 시세차익만 노릴 뿐이다.
투자 참여 절차나 과정도 크게 다르다.
IPO에 참여해 주식을 받기 위해선 금융기관에 가서 증권계좌를 열고 돈을 넣은 후 기다려야 한다. 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이 많은 물량을 받아가면 개인이 받을 수 있는 물량이 적다. 공모가격도 기관이 결정한다. 개인은 결정권이 없고 정해진 룰을 따라야만 한다. 반면 ICO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이미 들고 있다면, 해당 계좌로 코인을 보내고 내 계좌를 알려주면 끝난다. 퍼블릭 세일은 물론 프라이빗 또는 프리세일 등에 참여해 할인된 가격으로도 받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쉽고 간단한 셈이다.
앞서 다방면에서 IPO와 ICO를 비교해 봤다. 격차가 상당하다. 앞서 얘기했지만 기본 철학부터 다르다. IPO는 기업과 투자은행, 거래소 등 강력한 컨트롤 아래 중앙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잘 짜여 질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다. 반면 ICO는 분산환경에서 오픈소스를 통해 누구나 진행이 가능하다. 중앙집권적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참여자가 많을 수록, 분산될 수록 성공한다.
그래서 IPO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ICO를 보면 투자할 프로젝트가 거의 없다. 성공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프로젝트가 하나도 없어 결국 투자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특히 분권화된 플랫폼에서 작동되는 비즈니스 모델은 국가의 경계선을 넘나들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의 어떤 특정한 규제시스템을 적용해 보기도 어렵다. 사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 리스크도 상당하다.
그래서 인지 일부 국가들은 ICO를 통해 발행되는 토큰에 대한 분류 기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명확하게 정의한 후 규제 시스템의 틀 안에 담아두려는 것이다. 미국도 ICO 통해 발행되는 토큰을 성격에 따라 증권으로 분류하고 증권법을 적용한다. 스위스 연방금융감독청(FINMA)은 지난 2월 ‘ICO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암호화폐를 토큰 지급형(결제수단), 자산형(증권), 유틸리티형(기술적 수단)으로 분류한다.”고 발표했다. 가장 보수적이면서 강경한 자세를 고수하던 중국도 홍콩에 한해 ICO를 허용했다.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고 갈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기존의 비즈니스 판을 뒤흔들 강력한 기술’이라는 데 동의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ICO를 규제시스템 밖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암호화폐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들은 ICO의 특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필요한 지식을 쌓은 후에 투자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또 블록체인을 탐구하는 연구자나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한국에 건전한 ICO 생태계가 꾸려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정부도 한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ICO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그리고 성공적 ICO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열린 자세로 시대변화를 읽어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ICO에 대한 미온적 태도를 버리고 전향적 마인드로 바뀌길 바랄 뿐이다. /이화여대 융합보안연구실
※ 편집자 주
- 우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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