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언어는 제1세대 언어인 기계어에서 제2세대 언어인 어셈블리어를 거쳐 제3세대 언어로 발전했다. 그런데 제3세대 언어는 특정 언어로 지칭하기 어렵다.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플랫폼도 이와 비슷하다. 제1세대가 비트코인, 제2세대가 이더리움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나 제3세대 플랫폼을 표방한 프로젝트들은 여러 가지다. 다만 코볼, 포트란 등이 대표적인 제3세대 컴퓨터 언어로 불리듯, 블록체인계 제3세대에도 대표주자는 있다. 이더리움을 잡겠다고 나선 이오스다.
◇‘이더리움 킬러’ 이오스, 무엇이 디앱들을 끌어당겼나=이오스는 메인넷 출시 전부터 ‘이더리움 저격수’로 불렸다. 이더리움처럼 탈중앙화 어플리케이션(DApp·디앱)들을 위한 오픈소스 플랫폼인 동시에 이더리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뒀기 때문이다. 이오스인덱스아이오(EOS index)에 따르면 메인넷이 출시된 지 약 6개월이 흐른 현재 이오스는 290여 개 디앱을 확보했다.
초당 거래량(TPS)이 15~20에 불과한 이더리움과 달리 이오스는 DPoS(Delegated Proof of Stake·위임지분증명) 합의 알고리즘을 사용함으로써 1,000 이상의 TPS를 확보했다. 이더리움의 단점으로 지목되는 확장성 부족이나 전기료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했다. 이는 이더리움 기반 디앱들이 걱정하는 요소를 해결한 것이기도 했다. 이더리움을 택한 디앱들조차 느린 처리 속도나 확장성 부족으로 인한 과부하 현상을 걱정했다.
또 이오스는 거래에 수수료를 매기지 않음으로써 디앱 사용자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했다. 이더리움 디앱에서 사용자가 가스(Gas)비라 불리는 거래 수수료를 내는 것과 차별화하는 점이다. 이오스 디앱들은 사용자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는 대신 일정량의 이오스 코인(EOS)을 보유해야 하지만, 사용자 유치가 유리하다는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이름값보다 속도나 사용자 유치 등 혁신을 중요시하는 디앱들은 이더리움 대신 이오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블록체인 기반 확률 생성 기술을 게임에 적용한 세븐체인(7 Chain) 프로젝트는 게임 디앱 상용화를 위해 속도가 빠른 이오스를 택했다. 황진중 세븐체인 차장은 “이더리움은 게임에 사용하기에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이오스 메인넷 출시 이전엔 플랫폼으로 스텔라를 고려하고 있었다”며 “이오스 메인넷이 나온 이후, 스텔라보다 확장성이 더 좋은 이오스 플랫폼에서 작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거래 수수료 문제도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게임에서 아이템을 구매할 때마다 수수료가 발생한다면 기존 중앙화 게임보다 인기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세븐체인은 거래 수수료 없는 이오스 진영에 합류했다.
이오스 기반 RPG 게임인 이오스나이츠(EOS Knights) 역시 속도를 위해 이오스를 선택했다. 신명진 이오스나이츠 프로젝트 리더는 “이오스는 블록 생성 시간이 0.5초에 불과한 빠른 속도를 갖고 있고, 게임 아이템 추가나 버그 수정이 용이해 플랫폼으로 적합했다”고 설명했다.
◇‘DPoS는 탈중앙화 아니다’ 문제제기…비트코인 플랫폼의 등장=그러나 완벽한 플랫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더리움 저격수인 이오스 역시 단점은 있다. 거래 처리 속도를 높이려면 처리 절차를 단순화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간 블록체인의 처리 속도가 느렸던 것은 모두의 합의를 거치는 탈중앙화 절차 때문이었다. 따라서 21명의 블록 프로듀서에게만 블록 생성을 맡기는 이오스의 DPoS 합의 알고리즘은 합의 시간을 줄여 속도를 높인 대신, 대표자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블록체인의 기본 정신인 ‘탈중앙화’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도 지난해 이오스에 대한 견해를 처음 밝히는 자리에서 “중요한 프로토콜을 빼면 당연히 속도가 빨라진다”며 “이오스는 중앙화된 블록체인”이라고 비판했다. 앞으로 나올 플랫폼들은 이더리움 2.0이 개발 중인 샤딩 등의 기술로 속도를 높이고, 탈중앙화는 최대한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탈중앙화 논쟁이 지속되자, 탈중앙 개념이 등장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소수의견도 제기됐다. 최초의 플랫폼 블록체인은 이더리움인 줄만 알았는데 비트코인도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고 주장하는 프로젝트가 나온 것이다. 비트코인이 플랫폼으로서 기능하지 못했던 것은 비트코인 스크립트가 반복 명령어를 쓸 수 없는 튜링불완전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RSK 프로젝트는 튜링완전성을 가진 비트코인 사이드체인을 개발함으로써 비트코인을 플랫폼화했다.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정신을 이어가면서 디앱들이 올라올 수 있도록 했다는 게 RSK 측 설명이다.
디앱들도 탈중앙화의 장점인 보안, 투명성 등을 확실히 하고자 RSK를 눈여겨보고 있다. RSK의 첫 암호화폐공개(ICO)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탄생했다. 국내 기업 템코(Temco)는 비트코인(RSK)을 기반으로 물류 데이터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근일 템코 CTO(최고기술책임자)는 RSK를 택한 이유에 대해 “이오스가 RSK보다 더 빠르지만, 참여자들의 검증 과정을 간소화했기 때문에 ‘진짜 블록체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블록체인을 쓰는 이유는 모두의 검증을 거쳐 투명성을 극대화하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선 비트코인의 작업증명(PoW·Proof of Work) 합의 알고리즘이 진정한 블록체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하면 검증 과정이 많아 보안을 확보할 수 있다”며 “RSK는 초당 거래량이 100 정도로 이더리움보다 훨씬 빠르고, 페이팔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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