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게임업계 내 은어인 ‘존버’는 ‘꾿꾿히 버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한 현재, 이 단어는 ‘버티면 언젠간(?) 오른다’는 의미로 쓰인다. 암호화폐의 가치를 믿거나 이미 큰 기대손실이 발생해 심리적으로 현금화를 하지 못하는 많은 암호화폐 홀더들은 ‘강제 존버’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고 돈을 빌리는 서비스는 속속 나오고 있다. 주식 투자자가 주식을 담보로 저축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듯, 암호화폐를 담보로 법정화폐나 다른 암호화폐를 빌려주는 서비스다. 해외에서 먼저 나온 암호화폐 담보 대출 서비스가 얼마 전 국내에서도 제공되고 있다.
솔트(Salt)나 이더랜드(ETHlend)는 대표적인 해외 서비스다. 이들은 BTC나 ETH와 같은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고 법정화폐 혹은 다른 종류의 암호화폐를 빌려준다. 대출을 원하는 고객은 자신의 자산현황과 담보로 맡길 암호화폐를 공개하고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빠르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더리움의 스마트 콘트랙트가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고객은 더 낮은 이율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채무자의 암호화폐는 콜드월렛에 저장된다.
◇암호화폐의 가치를 믿는 투자자들= 이 같은 사업이 가능한 이유는 암호화폐가 상승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암호화폐를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이나 빌려준 서비스 제공자 모두 암호화폐 가치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암호화폐가 값이 오르기를 기대하며 계속 보유하길 원한다. 그냥 들고만 있다면 오르기 전까지는 어떤 이득도 취할 수 없지만, 암호화폐 대부업을 이용하면 투자자는 매도하지 않은 암호화폐를 통해 현금을 더 빌려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내서 BTC와 ETH를 담보로 대출 서비스를 시작한 주민철 더널리 대표는 “암호화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오르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 암호화폐를 매도하지 않고 붙들고 있다”며 “BTC로 대부업을 하는 업체들 역시 암호화폐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암호화폐 시장이 폭락해 정해진 담보비율을 채우지 못하면 채무자는 추가로 담보를 제출하거나 담보가 즉시 청산되는데, 이 경우 양쪽에 모두 피해가 가게 된다. 암호화폐 대부업 사업자들은 그럴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암호화폐 담보 대출,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 일반적인 대출구조에서는 담보로 하는 신용도나 자산가치가 중요한 지표가 된다. 신용도가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대출액에 제한이 걸리게 되고 이자율 등에서 차등 대우를 받게 된다. 한편 암호화폐 담보 대출에서는 신용도 대신 철저히 고객이 가진 암호화폐 자산의 가치만을 기준으로 대출이 이루어진다. 또한, 서비스는 24시간 제공된다. 언제든 대출과 상환이 가능하며, 중도상환 수수료는 없다.
국내 암호화폐 담보 대출 서비스 제공업체의 이자율은 15.82% 수준이다.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이 높은 탓에 부동산 담보 대출보다 이자율은 상당히 높다.
암호화폐 담보 대부업은 국내법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은 없어 보인다. 대부업 라이선스는 관할 관청에 등록하면 비교적 쉽게 취득할 수 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대부업 등록 요건에는 담보와 관련된 요건은 없다”면서 “담보의 종류를 제한하는 규정도 없으므로 암호화폐를 담보로 하는 대부업이라 해도 법률상 등록을 받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는 “암호화폐를 담보로 하는 대부업도 일반 대부업과 등록에서는 법률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 역시 “현행 대부업법에는 담보물의 성격에 대해 규제하고 있는 내용은 없어서 암호화폐는 (부동산이나 자동차와 같은) 일반 자산처럼 취급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단, 국내에서는 대부업을 ‘금전’의 대부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원화 대출만이 허용된다.
이자율도 법정최고이자율 24%를 넘지 않는다면 법률적으로 문제 될 사안은 아니다. 정재욱 변호사는 “암호화폐는 가격의 등락이 심해 상환 시 암호화폐의 개수를 기준으로 상환할 경우 (법정최고이자율을 넘길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특정 시점의 가격을 기준으로 원화로 상환한다면 이 부분에서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대출 한도에 있어서도 대부업법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한도 내에서는 신용도나 증명서류 제출 없이 대출이 가능하다. 시행령은 거래상대방이 29세 이하이거나 70세 이상인 경우 100만원, 이외의 경우 300만원까지로 한도를 정하고 있다. 이치승 더널리 PM은 “서비스 이용자들이 많지 않아 규정에 따라 300만원을 최대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수요가 더 생길 경우 더 넓은 범위의 상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서연기자 minsy@decenter.kr
- 민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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