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게임을 잘 만드는 국가가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취재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당연히 한국 아닌가요?” 대한민국은 자타공인 e-스포츠 강국이자,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 굵직한 온라인 게임을 만든 나라 아닌가.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아뇨, 중국입니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때는 사전 테스트가 중요한데 중국에서는 클로즈 베타에 참여하는 테스터의 모수 자체가 다르단다. 북미와 일본은 스토리가 튼튼한 마니아층 게임을 잘 만드는 반면, 중국은 대규모 게임에 최적화된 시스템 개발에 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고선 한 마디 덧붙였다. “만약 중국 같은 나라가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게임을 개발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 게임 산업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십 우승컵은 중국 신예팀 ‘IG’가 차지했다. 중국 게임 재미없다는 말도 옛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9년 1분기 중국 게임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모바일 게임시장 100위권 중 60개 이상이 중국 개발사 작품이다. 더구나 지난주에는 시진핑 주석이 블록체인 기술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며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중국 블록체인 게임 개발 속도가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반면 게임을 잘하고, 잘 만들었던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게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7년 한국은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암호화폐를 향한 관심이 뜨거웠다. 또한 오랫동안 e-스포츠 절대강자라 불릴 만큼 게임 산업을 향한 국민적인 관심도 높았다.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블록체인 게임 산업이 다른 어느 국가보다 쉽게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얘기다.
아쉽게도 현실은 오리무중이다. 암호화폐를 향한 정부의 부정적 기조가 블록체인 게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지난해 ‘유나의 옷장’ 사건 이후 블록체인 게임 업계에서는 심의 신청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국내법인 게임사들은 암호화폐가 합법인 북미, 일본 같은 해외시장에서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익명의 블록체인 게임 관계자는 “한국 게임사인 만큼 한국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블록체인 기업 노드브릭이 지난 9월 등급 심의를 신청했다. 아직까진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물론 규제 당국의 가이드라인 자체가 블록체인 게임 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진 않는다. 그러나 마중물은 될 수 있다. 그동안 온라인·모바일을 비롯한 게임 산업들은 먼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후, 수많은 게임이 출시되고, 그중 성공모델이 등장하면, 자금이 유입되며 산업 성장이 탄력을 받는 단계를 밟아왔다. 그 모든 수순의 첫걸음이 정식 유통을 위한 ‘등급 분류’였다.
“중국 블록체인 게임이 자리 잡지 않은 지금이 적기입니다. 아직까진 창문이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등급 지정이 또 유야무야 미뤄진다면 그땐 정말 창문이 닫히고 말 거예요.” 취재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블록체인 게임 산업의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
/조재석기자 cho@decenter.kr
- 조재석 기자
- cho@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