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가상자산 서비스를 구축하려면 다양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토큰 발행, 가상자산 지갑, 커스터디, 지불결제 등 구축해야 할 시스템만 해도 상당하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파이어블록스는 이러한 인프라 기술 전반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한국 기업들이 가상자산 산업에 점점 주목하면서 파이어블록스도 국내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스티븐 리차드슨 파이어블록스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은 파이어블록스를 ‘포괄적 디지털 자산 기술 플랫폼(comprehensive digital asset technology platform)’이라고 정의했다. 파이어블록스는 전세계 1800여개 기업에 WaaS(Wallet-as-aService), 커스터디, 토큰화(Tokenization), NFT 발행 등 관련 서비스에 필요한 기술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최근 블랙록이 발표한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 첫 토큰화 펀드(BUIDL)에도 파이어블록스는 빗고, 코인베이스 등과 함께 초기 참여자로 이름을 올렸다. 파이어블록스는 개인 키 관리, 토큰 전송 네트워크를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영국·이스라엘·홍콩·싱가포르·독일·프랑스·스위스 등에 지사를 두고 있는 파이어블록스는 최근 한국 시장 탐색에 나섰다. 리차드슨 총괄은 “과하게 투자를 하기보다 기회를 엿보며 시장 수요를 파악하려고 한다”면서 “규제 동향을 살핀 뒤 적합한 파트너를 선정해 올해 말쯤 성장을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경영 기조를 반영하듯 최근 뽑힌 한국 담당 인력은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에 상주하며 업무를 보고 있다.
리차드슨 총괄은 국내 당국이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는 금지하면서도 개인의 가상자산 투자는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규율하려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오는 7월 시행되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당국이 개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금지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공고히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싱가포르에서도 가상자산 거래소 등 기관을 규율하는 제도는 있지만 개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장려하는 편은 아니”라고 말했다. 리테일 분야 성장은 기업의 가상자산 산업 참여를 독려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내에 가상자산 관련 포괄적 규제가 마련되면 한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중요한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리차드슨 총괄은 국내 기업의 수요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금융사는 주로 토큰증권과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다양한 자산이 토큰으로 발행될 때를 대비해 어떤 인프라를 구축할지 준비한다는 취지다. 반면 비금융사는 웹3를 활용해 사용자와 더 나은 상호작용을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NFT를 이용해 사용자 충성도를 높이고,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그는 “미디어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음악·예술 등 지식재산권(IP)을 어떻게 블록체인을 활용해 세계적으로 확산해 나갈지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파이어블록스는 지난 2022년 1월 5억 5000만 달러(약 7375억 5000만 원) 규모의 시리즈E 라운드를 마무리했다. 당시 기업가치는 80억 달러(약 10조 7240억 원)로 평가받았다. 꾸준한 성장 비결을 묻자 그는 “기본 플랫폼을 개발하고, 이를 전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구축한다”면서 “최전선에서 고객사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 시장이 디지털 자산과 웹3 기술에 익숙하다는 사실은 한국 기업에게 엄청난 경쟁우위”라면서 “이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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