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은행-1거래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규제 정당성이 부족하고, 이용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데다 거래소와 은행의 혁신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8일 ‘1은행-1거래소 규제 관련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를 내고 “1은행 1거래소와 같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과 그 시행령은 물론 감독규정이나 가이드라인에도 없는 규제는 규제·감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1은행 1거래소 규제는 은행과 가상자산 거래소가 일대일로만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뜻한다. 법적으로 명문화된 조항은 아니지만 자금세탁방지(AML)와 고객확인 의무를 가상자산거래소와 은행에 부과하는 과정에서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국내 원화 마켓 거래소는 △업비트-케이뱅크 △빗썸-KB국민은행 △코인원-카카오뱅크 △코빗-신한은행 △고팍스-전북은행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고 있다. 반면 한국보다 앞서 가상자산 관련 제도가 정비된 미국과 같은 해외 주요국에서는 거래소와 은행 간 제휴 구조에 대해 규제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고 있다.
1은행 1거래소 규제는 가상자산 업계의 대표적인 그림자 규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이용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컸다. 특정 거래소와 거래하려면 해당 거래소와 계약한 은행의 계좌를 이용해야 한다. 즉 거래소가 제휴 은행을 변경하면 사용자는 해당 거래소를 계속 이용하기 위해 은행 계좌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올해 3월 빗썸은 NH농협은행에서 KB국민은행으로 실명계좌 은행을 변경했다. 이에 따라 기존 빗썸 사용자는 원하지 않더라도 KB국민은행 계좌를 신규로 개설해야 했다. KB국민은행 계좌가 있다 해도 해당 은행이 주거래은행이 아닌 사용자는 자금을 매번 이체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서 연구원은 이 규제가 가상자산 거래소의 혁신 동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도 문제라고 봤다. 거래소 입장에서 혁신적 서비스를 도입해도 다른 은행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은행도 이용자가 제휴 거래소 사용자로 제한된 상황에서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기 보다 주어진 환경에 안주할 가능성이 크다.
1거래소 1은행은 중소형거래소의 경쟁력을 낮추고 대형 거래소의 시장 독점을 강화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은행은 중소형 거래소와 계약을 맺으면 대형 거래소를 놓치게 된다. 이에 시중 은행들이 대형 거래소와의 제휴를 선호하면서 중소형 거래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서 연구원은 “이 시스템은 과거 우리나라에 가상자산 관련 보호장치가 부족했던 시기에 도입된 현실적 대안으로 투자자 신뢰 제고에 기여한 것은 맞는다”면서도 “관련 법 체계가 완성되면서 1은행 1거래소 규제 유용성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예전과 달리 최근 가상자산 관련 제도가 구축됨에 따라 시장 환경이 개선된 만큼 1은행 1거래소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율하는 특금법 개정안은 2021년 시행됐다. 이어 2024년에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됐고, 올해에는 가상자산기본법이 구축될 예정이다.
서 연구원은 1은행 1거래소 규제 완화로 더 많은 은행에서 가상자산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면 가상자산 이용자 편의성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봤다. 보유한 은행 계좌에 구애받지 않고 거래소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거래소들이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거래소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구성이나 인터페이스 등이 개선될 수 있다”고 봤다. 은행도 마찬가지로 서비스 다양화나 사용자 지원 강화에 신경 쓸 것이라고 서 연구원은 덧붙였다.
다만 그는 이 같은 규제 완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장집중도와 자금세탁 관련 이슈에 대해서는 추가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서 연구원은 “거래소 상장 절차 투명화와 수수료 비교공시 등을 유도해 독과점에 따른 피해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여러 은행에 분산된 거래 정보를 통합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범기관적 데이터 공유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은행과 거래소 간 정보 공유 채널을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 도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