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해킹으로 350억 원 상당의 물량을 도난당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 레일(coinrail)이 피해자들에게 현금이 아닌 자체 발행 토큰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투자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장기적으로 코인레일의 운영이 정상화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래소 내부에서 쓰는 토큰을 주는 방식은 실질적인 보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입장이다. 코인레일은 또 도난당한 만큼의 암호화폐를 직접 사서 갚아주는 보상안도 함께 제시했지만, 이 역시 앞으로의 이익이 날 경우를 전제한 계획일 수 있어 역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3일 암호화폐 투자자라고 밝힌 코인레일 해킹 사태 피해자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신문고에 코인레일이 제시한 보상안을 성토하는 내용의 청원을 게재했다. 청원에서는 “해킹 피해 보상에 대한 의무를 지고 탈취당한 물량만큼을 온전하게 반환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올바른 피해 보상 복구다”라며 “거래소에서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거래소가 스스로 그것에 가치를 정한 뒤 피해액만큼 주겠다는 발표를 한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 복구분에 대해서는 코인레일측에서 본인들의 자본을 투입하여 최대한 복구 해주어야 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며 “코인레일은 여태껏 거래소를 운영하며 발생한 수익금을 투입하여 복구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청원에는 3일 오후 4시 기준 354명이 참여했다.
앞서 코인레일은 지난달 30일 홈페이지를 통해 해킹 피해 토큰 물량의 59%는 아직 복구하지 못했다면서 이에 대한 보상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코인레일이 제시한 방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코인레일이 서비스 운영을 통해 발생한 이익으로 도난당한 암호화폐를 매입해 갚아나가는 방법이며, 또 다른 하나는 피해액에 비례해 거래소 자체 토큰인 ‘레일(RAIL)’을 발행해 나눠주는 방식이다.
투자자들의 반발이 몰리는 쪽은 레일을 발행하는 방식의 보상안이다. 코인레일 측이 밝힌 보상방법은 이렇다. 우선 비트코인마켓(BTC), 원화마켓(KRW)과 더불어 레일을 기축통화로 기능할 수 있도록 레일마켓(RAIL MARKET)을 오픈해 거래하도록 한다. 레일마켓에서는 레일로 다른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고 이외에도 에어드랍, 플랫폼 수수료, 상장 프로세스 참여 등에 쓸 수 있다. 이에 해킹 피해회원에게 레일을 분배할 경우 금전적인 보상이 될 것으로 코인레일 측은 기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배상 비율은 해킹 시점의 가격에서 ‘1 RAIL = 0.72 KRW(원)’의 비율로 교환한다. 예를 들어 26억1,954만2,080개의 물량이 해킹된 펀디엑스(NPXS)의 경우 당시 시세를 적용하면 130억 원 상당이다. 이를 0.72대 1의 비율로 환산하면 181억9,126만4,444 RAIL과 같다. 레일로 보상받은 회원들이 레일마켓을 이용해 700만원 상당의 1비트코인을 구매하려면 ‘1만 RAIL’이 필요한 셈이다.
투자자들은 다만 레일이 현실적인 보상안이 되려면 코인레일의 사업 안정성과 영속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보안 이슈로 무너진 거래소라 자체 코인을 유통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며 “코인레일의 청사진으로는 피해자들의 보상이 전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킹발생과 이후 불거진 부실 대응 논란, 일방적 거래 중단 등으로 코인레일의 평판과 신뢰가 떨어진 만큼 거래 재개 이후에도 투자자들이 코인레일을 계속해서 이용할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애초 0.72원으로 산정한 레일의 가격이 더욱 하락하거나 아예 이용이 없어 효용가치가 사라지면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보상이 될 수 없는 셈이다.
실제 국내 거래소 유빗(구 야피존)의 경우 해킹 피해를 거래소 토큰으로 보상했지만 이후 토큰의 가치가 사라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거래소 자체 토큰으로 해킹피해를 배상한 곳은 홍콩 거래소 비트파이넥스와 유빗 두 곳이다. 비트파이넥스는 지난 2016년 당시 시세로 6,000만 달러(약 600억 원)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해킹당하자 거래소 자체 암호화폐 BFX를 지급한 후 모회사 아이파이넥스가 BFX를 매입해주면서 1여 년에 걸쳐 피해보상을 마무리 지었다. 이와 달리 유빗은 55억 원 규모의 해킹 피해 후 투자자들에게 자체 토큰 ‘페이(Fei)’를 지급했지만 이후 파산절차에 들어가면서 결국 Fei 토큰은 디지털 먼지가 됐다.
코인레일 측이 피해 물량만큼의 암호화폐를 매입해 보상한다는 계획도 현실성이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코인레일 측은 “서비스 운영을 통해 발생한 이익으로 암호화폐를 단계적으로 매입해 피해 암호화폐를 갚아나갈 예정”이라고 했지만 과거에 확보한 수익으로 매입한다는 의미인지, 미래 수익이 발생하면 보상한다는 의미인지 불명확해 보상의 현실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만약 미래 수익으로 보상하겠다는 계획일 경우 역시 사업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려워 확실한 보상안이 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셈이다. 디센터는 이 같은 질문을 위해 코인레일 측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코인레일의 경우 보험 가입이 안 되어 있다는 점, 복구 물량을 전량 회수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미뤄 현금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며 “당장 지급보상을 위해 한 방편을 마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거래소 과실의 경우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따라 배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때는 현금자산으로 배상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당장 피해 발생액이 350억에 달하기 때문에 암호화폐로 배상하기 원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정 변호사는 또 “공정위 시정권고로 약관을 변경하기 전인 지난 5월 중순에는 거래소 과실로 인한 보상 방안에 대해 ‘원화로 보상할 수 있다’고 표현하면서 현금이 아닌 ‘레일’로 보상이 가능했다”며 “현재 약관은 시정됐지만 보상 가능 여부가 명확히 파악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코인레일 약관은 서비스 중단으로 홈페이지 이용을 제한하면서 확인할 수 없다.
/신은동 기자 edshi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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