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비트코인 붐’은 지나간 지 오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전세계 암호화페 시장의 큰 축을 맡고 있다. 20일 현재 국가 통화별 비트코인(BTC) 거래량을 보면 원화 거래량은 엔화, 달러화에 이은 3위다.
거래 규모를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한국에서의 암호화폐 투자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시장이 크면 투자 방식도 효율적으로 진화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지호 BxB 대표는 “한국에선 암호화폐 자본 이동이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한 때 한국에서만 암호화폐 시세가 높은 ‘김치프리미엄’이 있었던 것도 자본 이동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원화 거래량은 많지만, 해외 암호화폐 거래소 중 원화 입출금을 지원하는 곳은 드물다. 금융 관련 규제가 엄격한 탓에 해외 암호화폐나 투자 자본이 국내로 유입되는 것도 쉽지 않다. 강 대표는 “국내에서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하면 해외 암호화폐들이 더 많이 들어와야 가격이 안정화되는데, 금융 규제가 강하다보니 이런 자본 이동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그래서 김치프리미엄 같은 가격 거품도 꼈고 한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많이 봐야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강 대표는 원화에 연동(페깅)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한국 암호화폐 시장의 비효율을 없애는 데 원화 페깅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다”며 “해외 거래소에 원화 페깅 스테이블코인을 상장시키면, 그 거래소가 원화 입출금을 지원하지 않더라도 한국 투자자들이 쉽게 거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 인프라가 다른 국가에 비해 발달했듯, 암호화폐 투자를 위한 인프라도 발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등장한 세계 최초 원화 페깅 스테이블코인 ‘KRWb’는 말그대로 원화와 1:1로 연동된다. 지난달 말 출시 이후 현재까지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발행은 이더리움의 토큰 발행 표준인 ERC20로 이루어졌다. KRWb의 유통량과 거래 내역은 이더리움 블록체인 상에서 투명하게 공개된다. 강 대표는 “대중이 KRWb를 처음 얻을 수 있는 통로는 암호화폐 거래소”라며 “거래소와 가장 호환이 잘 되는 표준이 ERC20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KRWb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테더(USDT) 등 법정화폐 페깅 스테이블코인이 겪었던 신뢰 문제도 사전에 차단했다. 법정화폐 페깅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코인 발행량 만큼의 법정화폐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테더는 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해 신뢰 논란을 겪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강 대표는 “BxB 법인계좌에 원화가 들어오면 이를 기초로 KRWb를 발행하는 구조”라며 “원화 예금에 대한 질권자가 따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질권자는 BxB와 질권 설정 계약을 체결한 회계 컨설팅 펌이 담당한다. 강 대표는 “원화를 반환할 땐 KRWb를 먼저 소각하고, 그 후 예금 계좌에서 원화를 출금한다”며 “원화 출금 시 질권자와 BxB의 공동 승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KRWb 발행량 만큼 원화를 확실히 예치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신뢰 구축을 위해 회계 감사도 진행한다. 제미니달러(GUSD), 팍소스스탠다드토큰(PAX) 등 법정화폐 페깅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신뢰를 얻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강 대표는 “KRWb 발행량에 변동이 있는 경우 발행사 자체 보고서와 회계법인 실사 보고서를 함께 발행하고, 매달 은행 장부 보고서도 공개한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다이나 베이시스 같은 스테이블코인들은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해야 가격이 안정화되는 형태”라며 “거래자를 많이 확보하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에 급격한 가격 변동이 발생했을 때는 알고리즘보다 발행사가 좀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본다”며 법정화폐 페깅 스테이블코인이 가진 장점을 시사했다. 거래자가 많지 않은 시점에서는 발행사가 알고리즘보다 스테이블코인의 수요 공급을 빠르게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강 대표는 KRWb만의 경쟁력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US달러 페깅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스테이블코인으로서의 경쟁력은 있을지 몰라도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KRWb는 전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 투자자들이 더욱 투자하기 편하도록 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결제 등 실사용 분야로 KRWb의 활용처를 넓히는 데에는 규제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봤다. 강 대표는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결제를 가능하게 할 존재이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결제 분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실제 결제 분야로 가게 되면 전자금융법 등 지급수단 관련 법률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암호화폐 관련 규제가 확실시돼야 실사용처를 더 넓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제 분야로 진출하기 전까지는 유통량을 늘리는 게 목표다. 강 대표는 “KRWb가 실물경제에 활용돼기 위해선 시장 유통량이 먼저 확보돼야 한다”며 “지금은 가격을 안정화하고 거래 통로를 확보하는 데에 먼저 신경을 쓰고, KRWb가 안정적으로 유통된다는 인식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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