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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스냅샷]암호화폐 입법 공백에 거래소는 웃고 기술기업은 운다

/셔터스톡

관련 법은 없는데 수십 건의 소송이 난무하는 업계가 있다. 마땅한 법이 갖춰지기도 전에 큰돈이 오고 간 암호화폐 업계다. 입법의 필요성은 높아지면서 2017년부터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등장했지만,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통과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도 여전히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그런데 이 ‘입법 공백’이 블록체인 기술 기업엔 독이 되고, 암호화폐 거래소엔 득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기업은 마음 놓고 기술 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개발하는 서비스에 위법 요소는 없는지, 그 서비스가 규제 대상이 되는지 불확실한 탓이다. 반면, 거래소는 자전거래도 할 수 있고, 또 벌집계좌도 열 수 있다. 위법성이 있어 보이지만 법이 없어 처벌은 받지 않기 때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ICT 규제 샌드박스 운영 1년 성과’ 브리핑에서 “특금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 서비스의 규제 샌드박스 허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블록체인 기업 ‘모인’은 지난해 1월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1년간 120건의 신청 과제 중 102건을 처리했는데, 다른 기업에 비해 일찍 신청한 모인은 암호화폐·블록체인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제외해왔다.



모인은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에 선정된 기업이다. 지난해 11월 글로벌 회계 컨설팅업체 KPMG 인터내셔널과 핀테크 벤처투자기관 H2벤처스는 모인을 ‘올해의 핀테크 100대 기업’에 선정했다. 100개 안에 포함된 한국 기업은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와 모인뿐이다. 모인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수수료가 저렴하고 송금 속도가 빠른 해외 송금 서비스를 개발했다. 선정에는 이 같은 기술력이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인의 기술력은 입법 공백 앞에 풀죽어 있다. 모인은 과기부에 암호화폐 스텔라루멘(XLM)을 정산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송금 한도를 시중은행과 유사한 규모로 증액해달라고 요청했다.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이유는 수수료를 절감하기 위함이지만, 이는 규제 샌드박스 허용이 미뤄지는 원인이 됐다. 암호화폐 법이 없어 혁신 서비스 개발도 보류됐다.

한편 암호화폐 거래소는 입법 공백으로 오히려 득을 봤다.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며 가짜 회원 계정을 생성, 약 1,500억 원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송치형 두나무 의장은 최근 무죄를 선고받았다. 송 의장의 혐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전거래, 허위매매다. 상식적으로 봤을 땐 위법적 관행처럼 보이지만, 재판부는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법이 없어 처벌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범죄와 형별을 미리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때문이다.

업비트 사건을 지켜본 법조인들도 “암호화폐 거래소의 관행은 불법적인 경우가 많지만, 법률이 없어 완전한 불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주식 시장에선 불법인 자전거래도 법 없는 암호화폐 업계에선 처벌을 피해간 셈이다.

회원 실명계좌가 아닌 거래소 법인계좌(일명 벌집계좌)로 회원 돈을 관리하는 것도 괜찮다. 이 역시 법이 없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은 지난 2018년 거래소 코인이즈에 실명계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코인이즈는 농협은행 벌집계좌로 서비스를 운영해왔고, 농협은행은 금융위원회의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개정안’ 행정지도를 근거로 코인이즈의 행위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은 행정지도는 법이 아니기에 농협은행이 코인이즈와 계약을 해지한 것은 잘못됐다고 봤다.

벌집계좌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고 보안도 떨어지지만, 아직 이를 구체적으로 제재할 법이 없다. 다행히 국회에 계류 중인 특금법 개정안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실명인증 가상계좌를 갖춰야 거래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특금법이 아직 통과되지 않은 만큼, 벌집계좌를 이용하는 거래소는 시간을 벌고 있다.

산업이 성숙하려면 불법적 관행이 사라지고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기술 개발을 더디게 하고 불법만 양산하는 입법 공백이 이어져선 안 된다. 암호화폐 관련 법안이 국회에 처음 제출된 지 3년이 지났다. 수많은 법안을 흘려보내는 동안 우리나라 블록체인 산업은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박현영 기자
hyu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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