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0’으로 뜨거웠다. 참가자 17만 명, 4,400개 기업이 참여한 대규모 행사에선 소비자 판매용으로 진화한 인공지능(AI) 로봇과 ‘하늘을 나는 자동차’까지 나온 모빌리티,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가상현실(VR) 게임 등이 이목을 끌었다.
행사 한 편에는 블록체인도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존재감은 있었다. CES 홈페이지에서 11개 큰 주제 중 하나로 다뤄져서인지 일반 참가자도 블록체인 기업의 부스나 관련 발표 세션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CES 주관사인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임원도 디센터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CES에서 블록체인 비중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블록체인이 꼭 빠졌다. CES 2020에서 주목해야 할 기술 트렌드를 알려주는 사전 행사에서 블록체인은 언급되지 않았다. 행사 3일 차에 진행된 CES 전담기자 간담회에선 CTA 임원이 CES 2020의 키워드를 정리해 발표했으나, 역시 블록체인은 없었다. CES 폐막 보도자료에 정리된 중요 주제 목록에서도 제외됐다. 블록체인은 CES에서 볼 순 있었지만, 눈에 띄지는 않았다.
CES 속 블록체인을 취재하러 먼 길을 간 입장에선 참 아쉬웠다. 그래서 블록체인이 눈에 띄지 못한 이유를 분석해봤다.
이런 분류 방식은 곧 암호화폐, 블록체인이 트렌드로 올라서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금융에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에선 암호화폐와 핀테크가 유사하지만, 금융을 탈중앙화하는 것(암호화폐)과 편리하게 만드는 것(핀테크)은 분명 다르다. 또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디지털 머니’ 영역은 CES에서 블록체인이 묻힌 이유를 알려주는 듯했다.
예를 들어 이미 만들어진 로봇을 보여주며 소비자 판매용으로 상용화하겠다고 하면 신뢰할 수 있다. 스마트시티나 스마트홈은 아직 대중화되지 못했지만,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샤워기를 직접 보여주면서 스마트홈을 대중화한다고 이야기하면 믿음이 간다. 이런 기업들은 참가자들의 이목을 끈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업들은 아직 이 단계까지 오지 못했다. 데비오(Devvio)라는 스타트업은 800만 건의 초당 거래량을 처리하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했다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여줬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믿기 힘든 속도였다. 우리나라 기업 중엔 한글과컴퓨터 그룹이 ‘라이프 블록체인’ 모델을 터치스크린으로 시연했다. 출생 등록, 유언장 등 삶과 관련된 기록들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이었으나 실제 상용화되려면 정부기관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기술 특성상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전시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플랫폼이라면 적용된 서비스에서 거래가 처리되고 블록체인상에 반영되는 실제 과정을 증명할 순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제품이나 계획만으로는 참가자들의 이목을 끌기 어렵다.
블록체인 전문 기업 중에선 대규모 글로벌 기업은 없다. 일반 참가자들도 알 만한 유명기업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유명기업은 CES에 참가하지 않았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상 ‘전시’할만한 것이 없어서일지는 몰라도, 생소한 스타트업이 참가자들의 이목을 끌기는 쉽지 않다. 이번에 참여한 블록체인 기업 중 가장 유명한 기업이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시장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는 메이커다오 정도인데, 일반 참가자들에게는 디파이 개념 자체도 알려지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마존이나 삼성 SDS, 인도의 하이퍼링크 등 대기업이 부분적으로 블록체인 관련 서비스를 소개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부분’에 불과했다. 해당 기업들이 선보인 다른 제품에 가려진 탓에 블록체인은 트렌드로 올라서지 못했다.
내년에 열릴 CES 2021에선 전시공간이 더 늘어난다고 한다. 디지털 머니 영역을 벗어나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만의 영역이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다른 신기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 기업의 발전을 기대해본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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