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의 유동성 위기가 암호화폐 시장 전체로 번지고 있습니다. 바이낸스가 FTX 인수 의사를 하루만에 철회하면서 시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FTX의 파산설이 확산되면서 비트코인(BTC)을 비롯한 주요 암호화폐가 일제히 하락했습니다. FTX 사건 일지를 살펴보고, 이번 사태가 암호화폐 업계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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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5시 11분 코인마켓캡 기준 BTC는 전일 대비 8.37% 떨어진 1만 6673.26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시간 이더리움(ETH)은 7.06% 하락한 1180.93달러, 바이낸스코인(BNB)는 11.15% 내린 279.47달러, 리플(XRP)은 5.56% 떨어진 0.364달러입니다. FTX 사태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솔라나(SOL)과 FTX 토큰(FTT)의 하락폭은 더욱 큽니다. SOL은 19.54% 폭락한 15.32달러, FTX토큰(FTT)은 40.32% 급락한 2.75달러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FTX 사태는 지난 2일 코인데스크US 보도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사에는 FTX와 알라메다 리서치가 재정으로 지나치게 얽혀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지나 6월 30일 기준 알라메다 전체 자산 146억 달러 중 36억 6000만 달러가 언제든 매도 가능한 FTT로 구성돼 있습니다. 단일 자산으로는 1위 규모입니다. FTT 담보도 3위로 나타났습니다. FTX와 알라메다 모두 샘 뱅크먼 프리드 CEO가 설립한 곳입니다. 양사는 그간 독립적 관계를 표방했지만 재정적으로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던 겁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일각에서 플라이휠 스킴(Flywheel scheme)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더티 버블 미디어는 FTX가 얼마 전 파산한 셀시우스 네트워크와 비슷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난 4일 지적했습니다. 토큰을 발행하고, 고객 자산을 이용해 토큰을 구매합니다. 토큰 가격이 오르면, 이를 대차대조표에 반영합니다. 대단한 성공을 이룬 것처럼 뽐낸 뒤 기관투자가를 끌어 들여 주가의 적정 가치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지분 투자를 유치합니다. 혹은 토큰을 담보로 대출을 받습니다. 토큰 가격이 계속 오르면 이러한 방식이 지속 가능할 수 있지만,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폭락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구조입니다. 셀시우스 네트워크가 파산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관련 의혹이 불거지는 가운데 지난 7일 창펑 자오 바이낸스 CEO는 보유한 FTT를 전량 매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지난 5월 폭락했던 ‘루나(LUNA)’를 콕 집어 언급하며 위기 관리 차원에서 FTT를 처분하겠다고 전했습니다. 바이낸스의 FTT 매도 소식에 이어 FTT와 LUNA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글을 올라오자 시장 불안감이 확산됐습니다. 이에 캐롤라인 엘리슨 알라메다 CEO는 “대차대조표에 반영되지 않은 100억 달러가 있다”고 밝혔고, 샘 뱅크먼 프리드 FTX CEO도 이 글을 리트윗하며 시장을 안심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우려가 커지면서 많은 투자자가 FTX에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급하게 이동시켰습니다. FTX의 스테이블코인 보유량은 지난 7일 기준 불과 2주만에 93% 줄어들었습니다.
혼란스런 상황에서 지난 9일 오전 1시 경 창펑 자오 CEO는 FTX의 구원투수로 나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 FTX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고, FTX를 인수하기로 한 내용이 담긴 투자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비슷한 시각에 샘 뱅크먼 프리드 CEO도 이를 인정하며 바이낸스와 전략적 거래를 하기로 했다고 트윗을 올렸습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서류이긴 하지만 경쟁 구도에 있던 양사 대표가 위기를 타개하려 손잡기로 했다는 점에서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FTX 유동성 문제도 이로써 일단락될 것처럼 보였지만 불과 하루 만에 결정이 뒤집어졌습니다. 이날 오전 6시 바이낸스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기업 실사 결과와 최근 당국이 FTX 조사에 착수한 점을 고려해 인수 의사를 철회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며 암호화폐 시장은 폭락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뱅크먼 프리드가 FTX의 파산을 막으려면 80억 달러(약 10조 9360억 원)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두 가지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암호화폐 시장 규모가 다른 자산군에 비해 아직 크지 않은 만큼 특정 인물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나치게 크다는 겁니다. 루나, 테라 폭락 사태가 있기 전 권도형 테라폼랩스 CEO가 시장의 인플루언서 역할을 했듯 이번엔 창펑 자오 CEO의 트윗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이 요동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샘 뱅크먼 프리드 CEO도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엔 가상자산 업계 백기사, 암호화폐 시장의 JP모건으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주요 인물의 발언이나 행보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보단 철저한 검증과 검토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또 이번 사태는 블록체인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의 운영 방식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전반적 신뢰를 흔든 사건인 만큼 이번 사태가 시장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고영빈 블록투리얼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BTC)이 현 가격에서 50% 이상 떨어질 수 있다”며 투자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BTC가 1만 달러대까지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제언입니다. 그는 “기존에 BTC가 반감기에 따라 움직이던 패턴에서 벗어났다”면서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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