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1위 업비트의 아성이 흔들릴 조짐이 보인다. 자금세탁방지 의무 불이행 혐의로 금융 당국으로부터 제재 통지를 받은데다 법인 계좌 허용이라는 시장 변수까지 겹치면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의 금융당국 제재와 법인 계좌 허용을 앞두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쟁 구도가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이달 21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업비트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을 확정할 예정이다. 업비트는 고객확인제도(KYC) 위반 등 자금세탁방지 의무 불이행 혐의로 신규 이용자의 가상자산 출금을 제한하는 처분을 사전 통지받은 상태다. KYC는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거래소가 사용자 신원과 거래 목적 등을 확인하는 제도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재가 업비트의 신뢰도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법인 계좌 허용을 앞둔 상황에서 규제 준수 능력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신뢰도가 훼손된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그동안은 업비트가 압도적 점유율(약 80%)을 바탕으로 한 독주 체제였지만, 법인 투자 시대에는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인 투자자는 개인과 달리 리스크 관리와 규제 준수를 더욱 중요시하는 만큼, 업비트의 영업정지 처분이 법인 시장 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 2위 빗썸은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법인 시장 선점에 나섰다. 빗썸은 최근 KB국민은행으로 실명계좌 제휴 은행을 교체하며 법인 영업을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빗썸은 2018년부터 NH농협은행과 실명계좌 제휴를 맺었지만 지난해부터 국민은행으로 제휴은행 변경 신고를 준비해왔다. 기업 금융에서 강점을 보유한 국민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법인 고객 유치에 적극 나선다는 전략이다. 빗썸 관계자는 “법인계좌 계좌 허용 관련 정책 방향이 정해지는 대로 관련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개인 투자자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던 코빗도 법인 계좌 허용을 새로운 기회로 삼고 있다. 코빗은 신한은행과 함께 가상자산 커스터디 기업인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 케이닥)을 설립했고, 신한은행과 실명계좌 계약도 맺고 있다. 이를 토대로 법인 계좌가 허용되면 커스터디 등 B2B서비스를 선보이기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는 평가다.
업비트 관계자는 “제재심의위원회 등 향후 절차를 통해 충실하게 소명할 것”이라면서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그에 따라 법인 계정 운영도 준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법인계좌 허용을 계기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투자에 선구안이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들어오면 시세 변동성이 낮아지고 안정화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가상자산 시장이 개인투자자 위주의 투기적 환경에서 좀 더 건전하고 선진화된 환경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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