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 업종 코드라도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국내에서 2018년부터 가상자산 채굴 사업을 이어온 장재윤 채굴TV 대표는 11일 기자와 만나 산업용 전기를 쓸 수 없어 일반용 전력을 사용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장 대표는 “채굴은 별도 업종 코드가 없어 일반 컴퓨터 관련업으로 등록했고 이 때문에 산업 활동으로도 인정받지 못한다”며 “산업용 전기가 아닌 일반 전기를 써야 해 요금이 10~20% 더 비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혜택은커녕 채굴 수익을 세금 신고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글로벌 각국이 비트코인 채굴 산업을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전략, 산업 정책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내는 채굴 관련 제도가 여전히 공백 상태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시행된 국내 첫 단독 가상자산 법안인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에는 ‘채굴’이라는 용어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 개정안 6건에서도 채굴을 언급한 내용은 없었다.
반면 글로벌 주요국은 발 빠르게 채굴 산업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0일 국제수지 및 국제투자대조표 통합 매뉴얼 제7판(BPM7)을 발간하고 가상자산 채굴과 스테이킹 활동을 컴퓨터 서비스로 분류했다. 이번에 마련된 새 기준은 채굴과 같은 생산 행위를 국가의 수출입 및 생산 통계에 포함하도록 정의했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관련 활동이 상품·서비스·소득 통계 체계 전반에 반영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텍사스주는 채굴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보고 세제 혜택과 에너지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주요 채굴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텍사스 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는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경우 채굴 기업이 자발적으로 전력 사용을 줄이면 그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환경 규제를 풀어 채굴 산업을 육성하려는 입법도 추진되고 있다. 테드 크루즈 미국 상원의원은 이달 플레어 가스를 활용한 가상자산 채굴을 합법화하고 장려하는 연방 법안을 발의했다. 채굴 기업이 플레어 가스를 전력원으로 사용할 경우 탄소 배출 저감 기여로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는 “텍사스는 정유·가스 처리 과정에서 버려지는 플레어 가스를 채굴에 활용하는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며 “버려지던 에너지를 실시간으로 금융자산으로 전환하는 혁신 산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가상자산 채굴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발효됐다. 이로써 등록된 법인과 개인 사업자는 채굴 활동을 공식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국내에서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개념검증(PoC) 형태의 채굴 실증 사업부터 우선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제주도는 전력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시간이 많아 발전이 차단되는 ‘출력 제한’이 자주 발생한다. 이때 버려지는 전력을 채굴에 연계하면 유휴 전력 활용과 전력망 유연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세희 INFCL 연구원은 “채굴을 단순 수익성보다 에너지 전략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제주도에서부터 실증 사업을 추진해 정책적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도예리 기자
- yeri.d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