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만5,000명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Musketeer Bust(1968)’을 샀다. 이들은 한 명당 50달러씩 냈다. 총 200만 달러에 달하는 예술품을 개인들이 소유하게 된 것이다. 4만 개로 분할된 작품의 소유권은 스위스 할인판매 웹사이트 ‘QoQa’를 통해 판매됐다. 작품 전시는 소유권자들에 의해 결정되며, 현재는 스위스 현대 미술 박물관인 MAMCO에 전시돼있다.
그런데 이 거래에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고가의 미술품을 일반 대중이 공동 소유할 수 있지만 개별 소유권을 매매하기가 어려워 투자자들이 유동성 문제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마스터웍스(Masterworks), 마에케나스(Maecenas) 등 새롭게 등장한 예술작품 투자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작품의 소유권을 잘게 쪼갠 다음 대중에게 판매한다. 이오스(EOSIO)에 기반을 둔 코아트(COART) 역시 이들과 유사한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다.
◇금융 구조와 블록체인의 기술의 결합= 마스터웍스는 현재 앤디 워홀의 1979년 작품 ‘1 Colored Marilyn (Reversal Series)’을 판매하고 있다. 181만5,000달러(20억5,000만원)에 이 작품을 구입한 마스터웍스는 사전 관리비(Pre-Funded Admin Fees) 10%를 얹은 총 199만6,500달러(22억5,500만원)을 모집하고 있다. 잘게 쪼개진 소유권 하나의 가격은 단 20달러다. 마스터웍스는 매년 수수료 1%와 미래 수익의 20%를 받게 된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더 복잡한 구조가 짜져 있다. 마스터웍스(Masterworks.io, LLC)는 마스터웍스 어드미니스트러티브 서비스(MAS·Masterworks Administrative Service, LLC)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MAS는 다시 특정 작품을 보유한 마스터웍스 001(Masterworks 001, LLC)를 관리한다. 최종적으로 마스터윅스 001의 주식을 투자자들이 구매해 공동 소유하게 되는 구조다.
마스터웍스 001의 주식은 총 세 종류가 발행된다. 클래스B 주식은 전부 마스터웍스 갤러리(Masterworks Gallery, LLC)가 보유한다. 이 주식의 보유자는 마스터웍스 001이 수익을 냈을 때 20%의 수익을 가져올 권리가 있다. 작품이 추후 다시 판매돼 수익을 분배할 때 마스터웍스의 성공보수를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클래스A 주식은 69만8,780달러(7억8,899만원) 규모로 발행되는데, 작품에 투자한 개인들이 보유한다. 우선주(Preferred share)는 클래스A 주식 판매에 앞서 제한된 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된다. 우선주 보유자는 잔여재산분배(Liquidation preference)에 대한 우선권이 있다. 즉 작품의 가격이 하락해 손실이 발생하면 우선주 보유자는 주당 18달러까지 먼저 받을 수 있다.
작품을 매각하고 관리하는 서비스는 마스터웍스의 또 다른 계열사인 마스터웍스 브로커리지(Masterworks Brokerage, LLC)가 맡는다. 작품의 판매는 마스터웍스의 판단 아래 공개 매각을 통해 진행된다. 공개 입찰이 아닌 방법으로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선 클래스A 주식 보유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전통적인 금융기법이 적용된 구조에 블록체인 기술이 더해지게 된다. 클래스A 주식 보유자는 이에 상응하는 토큰을 분배받는다. 각 작품은 고유의 토큰과 연계된다. 앞서 언급된 작품 ‘1 Colored Marilyn (Reversal Series)’의 경우, 토큰 MW001과 연결된다. 물론 우선주 보유자는 특정 조건 하에 우선주를 클래스A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토큰 MW001를 얻을 수 있다.
마스터웍스는 현재 토큰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도 구상하고 있다. 다만 당분간 이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마스터웍스 브로커리지는 클래스A 주식을 거래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기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라이선스를 취득할 계획이다.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분야의 자산으로 편입 가능= 포트폴리오는 상관계수가 낮은 여러 자산이 섞여 있을 때 더 좋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투자자가 하나의 주식에 ‘올인’하지 않고, 다양한 주식과 부동산, 채권, 그리고 펀드에 분산 투자하는 것은 최적의 위험 대비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다. 하지만 예술 작품은 일반 대중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항상 예외였다. 최소 투자 단위가 크고, 유동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 번의 투자를 위해 많은 학습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반면 예술 작품의 수익률은 매우 높은 편이다. 예술품 시장 인덱스 중 하나인 아트프라이스100(Artprice 100)은 지난 2000년 이후로 360% 상승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8.9%에 달한다. 같은 기간 S&P500은 190% 올랐다. 아트프라이스100 인덱스는 총 100명의 예술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파블로 피카소의 비중이 가장 높게 잡혀있다.
마스터웍스, 코아트, 마에케나스 등 새로운 예술품 플랫폼들은 소액 투자가 가능하도록 할 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를 대신해 좋은 예술품을 선별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향후 가치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공유해 이해관계를 일치하기 위한 장치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열매컴퍼니가 운영하는 아트앤가이드는 지난달 30일 김화기 화백의 ‘산월(1963)’을 공동구매 방식으로 4,500만원에 팔았다. 개인들은 100만원으로 이 작품의 일부 소유권을 보유하게 되었다. 다만 우리나라 규제상 증권형 토큰 발행(STO)으로 소유권 매매가 진행되진 않았다. 대신 소유권을 블록체인에 부동산 등기부등본처럼 기록하는 방식을 활용해 명확한 소유권을 보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는 “미술품을 공동 소유 자산으로 다루고 있으며, 개인 간 거래도 가능하다”며 “소유권 거래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금융회사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동소유자들로부터 미술품의 관리와 처분에 대한 권리를 위임받았으며, 2년 내 특정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게 되면 작품을 매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환기 화백의 ‘산월’ 작품의 경우, 2년의 보유기간과 20%의 목표 수익률이 설정돼있다. 김 대표는 “미술품에 개인이 투자할 수 있게 되면 획일화되고 폐쇄적인 국내 미술 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다”며 “4,000억원 수준의 작은 우리나라 시장 규모를 더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두보기자 shim@decenter.kr
- 심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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