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업계에서 ‘밋업(Meet-Up)’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보통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업계 관계자들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설명하고, 관계자들끼리 네트워킹을 하는 자리를 말한다. 2018년 초반 암호화폐 불마켓(Bull Market) 당시엔 하루에도 여러 개의 밋업이 열렸다. 강남 호텔들의 주 수입원이 ‘블록체인 밋업’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베어마켓(Bear Market)을 한 차례 크게 겪으면서 밋업 수도 줄었지만, 모임 플랫폼 ‘온오프믹스’의 인기모임 목록엔 여전히 블록체인 밋업이 줄을 잇는다.
여러 밋업이 열리다 보니 블록체인 밋업만 찾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투자하고 싶은 프로젝트의 밋업에 가는 게 아니라, 블록체인 밋업이라면 모두 찾아간다는 점에서 ‘평범한 투자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그들 중엔 밋업에 참석만 하기보다는 원하는 바를 얻어가려는 일명 ‘밋업 체리피커’가 있다. 체리피커(Cherry Picker)란 체리로 장식된 케이크에서 하나뿐인 체리를 빼 먹는 사람, 즉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챙기는 사람을 뜻한다.
신기술을 알리기 위한 자리에 체리피커가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주최하는 밋업에는 확실한 ‘체리’가 있다. 프로젝트들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다. 추첨을 통해 암호화폐를 지급하는 ‘에어드랍’은 블록체인 밋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벤트다.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밋업마다 다니면서 에어드랍 토큰을 종류별로 모으는 사람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며 “프로젝트 발표 이후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 ‘언제 거래소에 상장되는지’ 집중적으로 묻기도 한다”고 전했다.
블록체인 업계가 유독 다른 업계에 비해 밋업이 많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ICO(암호화폐공개) 등을 통해 다른 업계에 비해 큰 금액의 초기 투자금을 확보한다. 때문에 밋업 같은 큰 행사를 열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밋업 체리피커로 인해 밋업의 본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밋업의 분위기가 추첨 이벤트에 치중되면 프로젝트의 발표나 정보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위 관계자는 “상장 일정이 기밀사항인 프로젝트가 대부분이라, 질의응답 시간에 상장 질문만 이어질 경우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밋업 체리피커가 행사에 큰 지장을 초래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달 열린 한 프로젝트·거래소 합동 밋업에서는 행사장에 너무 일찍 도착해 추첨티켓을 받지 못한 참석자가 경찰을 부르는 소동이 있었다. 해당 밋업 관계자는 “그 참석자가 행사장에 도착했을 땐 너무 이른 시간이라 추첨 티켓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이후 참석자가 추첨 이벤트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경찰을 불렀다”며 “경찰의 상황 정리 후 다시 밋업을 진행해야 했다”고 전했다.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과 달리,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에게는 투자자들에게 개발 진행상황을 알려줄 수 있는 정형화된 채널이 없다. 프로젝트와 투자자 간 소통 채널로 쓰이는 오픈 카카오톡방이나 텔레그램방에선 공식 발표를 하기 어렵다. 이때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활용하는 게 밋업이다. 이런 밋업마저 체리피커로 인해 흔들린다면 아직 미성숙한 블록체인 업계 문화가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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