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모바일 결제 천국’으로 불립니다. 전 세계에서 결제가 가장 편리한 국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보다도요. 상해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게 ‘모바일 결제’입니다. 텐센트의 위챗페이와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만 있으면 (거의) 모든 중국 내 생활이 가능합니다.
이런 변화는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불과 몇 년 전인 2015년만 해도 소매점이나 길거리 과일가게에선 현금을 주로 결제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그렇죠. 2016년 말과 2017년 초, 오직 스마트폰과 손가락 지문만 있으면 모든 결제가 가능한 환경으로 중국의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핀테크의 발전을 등에 업고 중국은 또 다른 시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무인시대’입니다. 레스토랑에서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고, 물류창고에서는 로봇이 재고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점원이 없는 상점을 흔하게 접하게 됩니다. 상해와 북경에선 특히 그렇습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원하는 상품을 고르고 알리페이 혹은 위챗페이로 결제하는 과정에서 점원의 역할은 더 이상 없습니다.
성장하는 무인시장, 2020년 300조원으로 커진다
중국의 시장조사업체 아이미디어 리서치(iimedia Research)의 조사 보고서를 살펴봅시다. 중국 무인상점 시장 매출 규모는 2017년 380억 위안(6조5000억 원)이었습니다. 이 규모는 2020년 약 1조8105억 위안(약 300조3000억원)으로 거대해질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려 3년 사이 50배 상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향후 5년 동안 연평균성장률이 281.3%로 나타날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알리바바, 텐센트, 쑤닝 등 중국의 주요 대기업을 포함한 30여개 업체가 이미 무인상점 시장에 발을 들였습니다. 가속 페달을 밟듯 이 커져가는 시장에 동참하는 모양새죠. 2016년 샤오E웨이디엔은 1000만 위안의 투자금을 받았고, 다른 경쟁업체인 벤리펑, 24아이고우편의점, F5미래상점, 샤오마이편의점, 빙고박스 등도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들 도전자들이 성장을 위한 투자유치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알리바바 마윈, NEW RETAIL을 말하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은 2016년 항저우윈치대회에서 ‘신소매(New Retail)’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신소매는 당시 중국 전역의 관심을 받았죠.
발달된 핀테크와 일반화된 인터넷 쇼핑에 비해 오프라인 쇼핑에 소비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더 비쌉니다. ‘오프라인 상점을 디지털화한다면?’이라는 질문이 마윈 회장의 아이디어의 핵심입니다.
장융 알리바바 CEO “신소매는 오프라인 가게를 디지털화해 제품과 소비자 사이의 화학적 융합을 일으키는 새로운 소매 방식입니다.”
마윈은 행동에 나섰습니다. 알리바바는 중국 내 백화점과 쇼핑몰을 보유한 유통그룹 ‘인타임(Intime)’과 대형 슈퍼마켓 체인 ‘리엔화’의 지분을 인수해 오프라인 유통 시장도 장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거대 중국 IT 기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그리고 ‘물류와 유통’을 합친 기존의 O2O 방식에 혁신 기술을 더했습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접목해 생산-유통-판매 절차를 더욱 개선하고, 업무 및 경영 방식과 산업 생태계를 다시 설계하고 있습니다.
2017년 알리바바는 ‘타오카페’를 선보입니다. 타오카페는 식당과 쇼핑을 하나로 융합한 무인상점입니다. 약 200제곱미터의 공간에서 50명 남짓의 사람들은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용방법은 간단합니다. 타오바오 앱으로 매장 입구에 위치한 QR코드를 스캔해 회원인증을 합니다. 그리고 안면인식을 통해 알리페이 지불 시스템을 이용합니다. 타오카페의 CCTV와 스마트 기기들은 소비자의 구매 행동과 상품 등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상품 앞에 머무는 시간과 이동 경로도 분석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알리바바는 서비스를 빠르게 개선해 나갑니다.
상품 구매 후 소비자는 매장을 떠납니다. 이때 두 개의 문을 통과합니다. 첫 번째 문이 자동으로 열리면, 몇 초 후 두 번째 문이 열립니다. 그 사이에 연동된 알리페이에서 소비자가 구매하기로 선택한 상품을 파악하고 결제합니다. 그 결과는 모니터에 표시되며 소비자는 이를 확인하기만 하면 됩니다.
허마선생은 다른 알리바바의 프로젝트입니다. 이 신선식품 매장은 중국 전역에 약 90여 개가 있습니다. 그중 20여 개가 상해에 있습니다.
거주지 3km 이내면, 30분 안에 배달한다
허마선생은 이 모토 아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또 빅데이터에 기반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가장 신선한 제품을 획기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앱을 통해 신선식품을 구매할 때 배달받고 싶은 시간대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식품 혹은 말 한 병도 원하는 시간에 집에서 받을 수 있게 된 거죠. 물론 직접 가서 사도 됩니다. 식품의 QR코드를 스캔하면 자동구매가 진행됩니다. 알리페이의 안면인식 시스템에 자신의 정보를 등록해 결제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안면인식 결제 시스템은 현재 중국인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텐센트, 중국의 카톡 위챗을 무기로 들다
위챗(Wechat)을 보유한 텐센트도 무인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중국의 카카오톡(혹은 텔레그램)인 위챗의 사용자는 약 10억 명에 달합니다. 위챗 안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습니다. 공중계정, 위챗페이, 미니앱 등이 이 세계를 이루고 있죠. 위챗에서 수집되는 정보는 방대합니다. 용휘마켓, 까르푸 등 리테일 파트너를 확보한 텐센트는 이 거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인상점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2017년 초, 텐센트는 광저우에 ‘Easy go’라는 편의점을 열었습니다. 출입문을 결제구역으로 설계한 최초의 편의점입니다. 이 상점은 중고급 주거 지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필품과 간식 등을 진열했습니다. 모든 상품 안에는 RFID 칩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고객은 QR코드를 스캔해 상품을 선택한 뒤 가게를 벗어나면 위챗페이가 자동으로 계산하고 결제합니다.
CityBox(魔盒)는 무인 가판대입니다. 고객은 결제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 없이 위챗 내의 Citybox 미니앱을 열고 위챗 결제를 입력하면 됩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고 물건을 꺼내 가져가는 시스템입니다. 냉장고 문을 닫으면 결제가 됩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와 같은 IT 공룡뿐 아니라 유통 공룡인 징동 역시 무인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018년 초, 징동은 길림성 장춘에 ‘징둥X무인슈퍼마켓’을 열었습니다. 이어 징동은 중국 전역에 100여 개의 무인상점을 개설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공유’에 이어 ‘무인’이 떠오른다
자동판매기(자판기)는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자동판매’는 노동을 하기 싫은 인류의 로망입니다. 세계 최초의 자동판매기는 BC 2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헤론은 동전을 넣으면 성수(聖水)가 흘러나오는 ‘성수 자동판매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자동판매기는 이집트 신전에 설치됐죠. 구리나 금으로 된 화폐를 투입하면 그 무게 때문에 입구가 열리고 그 틈으로 성수가 흘러나오는 구조입니다. 이 위대한(?) 발명품은 고대 그리스에도 수출되었습니다.
다시 자동판매기가 세상에 등장한 때는 1880년대입니다. 영국과 일본에서 현대적 ‘담배’ 자동판매기나 나옵니다. 그러다가 1935년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익숙한 자동판매기가 탄생합니다. 코카콜라가 판매비용을 줄일 목적으로 출시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무인상점은 무인자동판매기의 최신 버전인 것입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동판매기는 진화했습니다. 동전뿐 아니라 지폐와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조리 라면도 자동판매기에서 뽑아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핀테크,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의 기술은 상점 하나를 통째로 자동판매기로 바꾸고 있습니다.
무인상점의 업그레이드 버전은 무인식당일 겁니다. 항저우의 유명 식당 우팡자이(五芳齋)는 알리바바와 협력해 무인식당을 선보였습니다. 이곳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점원을 볼 수 없습니다. 직원 없는 홀에 들어간 고객은 입구에 위치한 주문 기기 혹은 앱으로 메뉴를 주문합니다. 조리가 끝나면 고객에게 음식 보관함 번호가 전송됩니다. 그러면 고객은 보관함에서 음식을 찾게 됩니다. 현재 중국에는 이와 같은 무인식당이 8곳 정도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소개한 허마선생도 일부 매장을 무인식당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습니다. ‘Robot He’입니다. 허마선생에서 구입한 신선한 식재료를 식당으로 가져온 뒤 샘플을 보고 메뉴를 결정합니다. 이러한 시도 덕분에 하마선생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정도 증가했습니다. 점포 관리도 좀더 용이해졌습니다.
공유경제는 기존의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구축되면서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은 이 공유경제의 핵심입니다. 무인경제의 핵심은 뭘까요? 바로 ‘비용절감’입니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비용절감’은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게 합니다. 물론 그 중간자 역할을 도맡은 플랫폼 사업자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게 되겠죠.
동남아시아의 공유 차량 서비스인 그랩의 사용자는 택시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무인상점의 고객은 다른 소매점보다 싸게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에 IT 기술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좀 더 쉽게, 그리고 좀 더 빠르게 서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빙고박스의 제품 가격은 일반 편의점보다 5%에서 15% 저렴합니다. 매장 관리도 효율화됩니다. 한 명의 담당자가 작은 무인상점을 관리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20분에서 30분 정도입니다. 즉, 한 명이 적게는 20개, 많게는 30개의 무인상점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관리비 또한 일반 편의점의 20% 이하 수준입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야말로 노동집약적인 사업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 같은 새로운 기술을 입힌 무인상점 비즈니스는 급성장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천쯔린 빙고박스 설립자 “역사적으로 직업은 항상 사라졌습니다.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 않나요? 그런 직업은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사람, 화물, 그리고 유통의 관계가 재구축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은 그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네트워크와 빅데이터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플랫폼을 더욱 효과적으로 ‘직렬화’합니다.
‘무인’은 오랜 옛날부터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키워드입니다.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려고 합니다. 중국에는 약 200여 개의 편의점 브랜드가 있으며 이들은 ‘무인’이라는 키워드로 가격 경쟁력을 키우려 합니다. 그리고 이 무인은 점점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듭니다. 지금은 물건을 사고파는 수준이지만, 인공지능은 사람을 대신해 상담을 해줄 것이며, 자율주행차는 사람을 대신해 운전을 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길거리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의 서비스를 사람이 직접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작성 이형주 디센터 글로벌 크루, 편집 심두보기자 sdb@decenter.kr
- 심두보 기자
- shim@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