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트론의 인수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스팀의 증인들이 합병에 반대하며 트론이 소유하게 된 6,500만 STEEM을 동결시키는 소프트포크를 감행한 것입니다. 불가역성을 지닌 하드포크와 달리 소프트포크는 다시 업데이트 사항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른바 ‘우리 증인들과 논의하지 않으면 언제든 토큰을 묶어버릴 수 있어!’라고 존재감을 과시한 셈이죠.
저스틴 선은 화가 났습니다. 합법적인 인수절차를 통해 지분을 구입했는데 토큰이 묶여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저스틴은 트론과 관계가 있는 거래소를 동원해 스팀잇 관련 증인들을 상위 20위권에 진입시켰습니다. 외부 힘을 빌려 아군에게 표를 몰아준 거죠. 해당 거래소에는 바이낸스, 후오비, 폴로닉스와 같은 글로벌 거래소가 있었습니다.
비탈릭 부테린은 이를 두고 비판에 나섰습니다. 그는 “대형 거래소에 예치된 고객 자금의 투표권을 활용해 스팀 DPoS(위임지분증명)를 공격했다”며 “사실상 ‘뇌물 공격’을 감행한 첫 대형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저스틴은 “인수 과정에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선택은 6,500만 STEEM을 동결하려는 악의적인 해커로부터 생태계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해명한 상태입니다.
트론은 일반적인 기업처럼 대표이사나 주주 관계를 변경하는 형식의 비교적 ‘중앙화’ 된 방식으로 스팀잇 재단을 인수했습니다. 이에 익명의 암호화폐 관계자는 “일반적인 회사랑 달리 암호화폐 프로젝트에는 DPoS의 원칙에 따라 해당 커뮤니티에 영향력(투표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만약 이들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고 인수를 진행했다면 별다른 마찰이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소프트포크를 단행했던 스팀 증인을 향해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생태계에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업데이트임에도 홀더들 모르게 비공식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이죠. 코인데스크는 이번 사태를 두고 “DPoS 방식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라며 “제대로 된 합의 과정 없이 소수 상위 증인들이 은밀하게 결정하고 실행함으로써 DPoS가 소수의 통제에 따라 운영된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기호 EOS 얼라이언스 한국 커뮤니티 매니저 또한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기호 매니저는 “커뮤니티 입장에서 봤을 때 이번 사건은 증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신의 계정도 묶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며 “이를 막기 위해 EOS에서는 온체인을 통해 업데이트 사항을 사전 공표하고, 실제 체인에 적용되기까지 일정 기간의 시간을 둠으로써 토큰 홀더들에게 충분한 고려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트론과 스팀의 ‘권력 투쟁’을 환영한다고 밝힌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EOS 창시자 댄 라리머(Dan Larimer)입니다. 그는 “만약 51%가 아닌 소수가 블록체인이 잘못됐다고 느낀다면 포크를 하면 된다”면서 “포크를 하더라도 블록체인의 진정한 힘은 커뮤니티에 남아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체에 관계없이 유저가 남아있는 곳이 ‘진짜 블록체인’이라는 겁니다. 이어 댄 라리머는 “탈중앙화에는 경쟁과 협력이 필요하다”며 “이번 스팀 사건이 그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무엇이 옳은 합의구조인지에 관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입니다. 스팀이 트론에 인수된다는 소식을 듣고 트위터를 남겼던 어느 스팀 유저의 글을 마지막으로 기사를 정리하겠습니다.
“저스틴 선이 스팀잇을 인수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마침내 스팀에도 마케팅과 PR 활동이 생기겠구나!’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트론은 (안 좋은 의미로) 내가 예측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재석기자 ch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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